노원신문

생선노점상 최진수의 2009년 2월 3일

100-b 2009. 2. 14. 14:39

▲ 생선 노점상 최진수

생선노점상 최진수의 2009년 2월 3일


버티는 것,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모진 시련은 자칫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된다. 용기만이 힘이 된다. 그 삶의 의지와 지혜는 가장 낮은 곳에 남아 있다. 당고개역 앞에 가면 매주 화요일, 인심좋은 생선노점상 최진수씨가 상계동 달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있다. 


설을 앞둔 1월 20일, 최진수씨의 생선좌판 앞에는 10여명의 동네사람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상에 올린 동태포를 뜨기 위해서다. 바쁜 칼놀림 속에서도 오고 가는 동네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눈다. 단골손님들은 반가운 얼굴로 오징어며 꽁치, 갈치, 청어 등을 주문해 놓고는 일을 보러 간다. 잠시 인터뷰 시간을 내 달라기가 미안해 다음을 약속했다.

최진수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6년째다. 화요일 아침 8시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좌판을 펼쳤다.

“배운 것이 많지 않아 20살 시절부터 경동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했어요. 박리다매로 팔다보니 고생해도 돈이 안되었는데, 고향선배가 생선을 팔면 남는다고 귀뜸해서 시작했지요. 처음엔 냄새나는 생선을 어찌하나 생각도 했는데 이왕 길거리에 나서는 것 해보자는 생각으로 했지요. 당시 건설잡부 일당이 3500원일때 2만원도 벌었죠. 그러다 구리시장에서 가게를 얻어 제대로 한번 해본다고 했는데, 구리농산물센터가 들어서니 가게세가 200만원이었는데 하루 3~4만원 밖에 못 팔았어요. 그때 다 까먹고 친구가 준 고물화물차로 다시 노점상을 시작했어요.”

월요일에는 공릉동 구길 주택은행 앞에서, 화요일은 당고개역, 수요일엔 천호동, 목요일엔 다시 공릉동, 금요일엔 고덕동으로 간다.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눈물나는 사연도 많다. 인근 상인들이 내쫒으려고 자동차로 치어서 119에 실려 가기도 했다.

“동네분들은 싸게 파니까 좋아하지만 세금 안내고 장사하는데 인근 상인들 눈치 안볼 수야 없죠. 요즘은 부녀회가 알뜰장을 유치하니까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도 쫓겨나기 십상이죠. 당고개에서는 그나마 약국어르신이 자리를 인정해주셔서 좀 편히 장사합니다. 인근 가게들을 생각해서 선어물은 안팔고 있어요.”

최진수씨의 하루는 새벽 3시면 시작된다. 구리수산시장에서 물건들 선도를 보고 기본적으로 15~25종류의 생선을 고른다. 박리다매로 파니까 싼 것보다는 싱싱한 것을 고를 수 밖에 없다. 맛 없다고 일주일 뒤에 가져오면 100% 반품해 줄 정도로 자신있게 고른다. 하지만 요즘 최상품 고등어, 갈치처럼 너무 비싸 팔 자신이 없으면 아예 살 수가 없다.

“날이 추워지면 물고기는 깊은 물로 들어가 잠을 잡니다. 떠 있는 고기들, 새끼들이나 작은 고기가 많이 잡혀 값도 쌉니다. 요즘은 수온이 높아서 오징어, 청어, 전어도 많이 나옵니다. 갈치나 이면수는 양이 줄어 제일 비쌀 철이죠. 더구나 달라가 비싸니까 원양어업으로 오는 건 다 비쌉니다. 이면수는 작년에 2만7천원 하던 것이 5만2천원으로 올랐어요. 콩나물값 100원도 깍는 주부들인데 파는 제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4~5군데 생선가게를 거쳐 찾아오는 단골들에겐 한 마리 덤으로 더 드리고, 당고역에서 종일 보내는 분들에게 한두마리 인심도 쓰기도 한다. 오후에는 떨이도 하니까 파는 만큼 다 남는 게 아니란다.

추석 지나면 장사가 되어도 설 대목 보내면 장사가 안된다. 학생들 학비가 목돈으로 들어가고, 봄 오면 햇나물 나오면서 또 수요가 좀 줄어든다. 겨울 내내 얼음 만지면서 장사하니 감기를 달고 사는데 그래서 4월부터 여름이 장사가 편하단다.

최진수씨의 올해 목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란다. 재고없이 단골손님들에게 모두 드리고 싶단다.

▲  백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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