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노원신문 451 사설 : 식위민천(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100-b 2009. 2. 3. 22:30

食爲民天(식위민천)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세계경기 침체의 쓰나미라는 고통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하게 출발한 정권은 해가 바뀌어도 겨울철 철거, 살인진압, 때법척결 등 인심만 흉흉해지고 있다. 조선조 임금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전대 군왕의 사례를 찾아 실행했다고 하는데 현재의 위정자는 어디에서 교훈을 찾고 있는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교과서에서 배운 조선의 역사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오로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학문적 논리를 가장한 ‘당쟁’을 벌였고, 권력에 방해된다면 국가미래를 위한 인재도 제거해버리는 ‘사회’를 치뤘다. 흡사 지금의 이전투구 여의도처럼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몇 몇 번의 반짝이는 개화기도 있었으니 그 중 세종대가 아닐까 한다. 조선의 국가 기틀을 세우고, 문화와 과학, 군사와 외교까지 큰 성과를 이뤘다. ‘한글’의 창제는 그 꽃의 정점이었다. 이런 성과가 태평성대 속에서 이룩한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위기극복이 결과적으로 역사상 최고의 문화가 되었던 것이다. 글을 아는 자라면 좀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세종대는 창업 이 후 왕위쟁탈로 피로 불든 선대가 있었고, 그 피의 역사는 후대에도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세종의 장인마저 대역죄로 죽음을 당하고 장모가 관기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왕권이었다. 밖으로는 명의 조공요구는 거세지고, 왜와 여진은 국경을 노략질했다. 백성들은 10년의 가뭄으로 흙을 끓여먹었다. 10년전의 IMF,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고통스런 시기였을 것이다.

그런 위기상황에서도 세종은 ‘도천법’을 도입해 인재를 널리 구하고, 집현전에서 백성을 위한 연구를 하게 하였다. 또한 의학, 농업, 천문, 병기 등 적임자에게 과제를 맡겼다.

그 결과 측우기와 혼천의, 칠정산내외편, 팔도지리지, 농사직설을 만들어 백성들은 아사에서 벗어났다. 향약집성방, 의방유취도 고통받는 백성을 위한 저술이었다. 조선화포를 만들고 개발해 북방으로 4군6진을 설치하고, 독도와 대마도의 왜놈들도 복속시켜 백성들이 노략질에 시달리지 않게 했다. 그래도 관원들에게 송사에 말려 당하지 말라고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들이 제 뜻을 편하게 바르게 전달할 수 있게 하였다.    

세종대 중흥의 원인은 다음에 있을 것이다. 세종1년 2월 12일자 세종실록을 소개한다.   

‘요즈음 수해와 태풍의 재앙으로 인하여 해마다 흉년이 들어 가난한 자가 먼저 고통에 처하고, 직업 있는 백성까지도 굶주림을 면치 못하니 너무나 가련하고 민망하도다. 슬프다. 한 많은 백성들의 굶어죽게 된 형상은 부덕한 나로서 두루 다 알수 없으니. 감사와 수령과 같이 무릇 백성과 가까운 관원은 나의 지극한 뜻을 받아들여 밤낮으로 게을리 말고 백성들이 굶주려 헤매지 않도록 유의하도록 하고, 궁벽한 촌락에도 친히 다니며 두루 살피어 힘껏 구제하도록 하라. 만약 한 백성이라도 굶어죽는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이 교서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죄를 논할 것이다.’

세종은 버려진 목재를 주워다 초가집을 짓게 하고 그곳에서 2년 4개월 동안 먹고 자며 정무를 보았다. 


노원신문 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