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쓴 자전거를

백두대간) 1. 천왕봉--정령치

100-b 2002. 12. 19. 17:17
54일간의 백두대간 단독종주기
끈끈이 산악회 박종국


(1) 천왕봉~정령치

내 생애 처음으로 도전하는 백두대간 단독종주!
가슴이 폭발할 것 같다. 천왕봉까지 2시간도 더 남은 것 같은데 속은 울렁거리고 백두대간 종주의 장도에 오르는 나를 격려하며 함께 축하등반하는 지원팀 일행들도 짜증을 낸다. 이렇게 과연 무사히 마칠 수있을까? 가슴에 유서까지 품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 모든 것을 토해내고싶다. 몇번을 토하고 법계사에 이르렀다. 날은 완전히 밝았고 제정신이 든다.
넘치는 샘물에 모두들 머리를 적시고 조금은 가벼워진 걸음으로 천왕봉을 향했다.
일출은 늦었지만 그래도 눈부시게 타오르는 태양의 숭고함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고, 3대가 덕을 쌓아야 먹을 수 있는 천왕샘물도 운 좋게 마실 수 있었다.
운해와 어우러진 아침햇살은 장관을 이루고 자연의 숭고함에 초라한 인간인 것을 일깨워 주듯 주눅이 들어버린다.
천왕봉 정상!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리본을 정상 표석에 달고 첫 기념촬영을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실감과 말 할 수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슴에 엄습해오면서 코끝이 찡해진다.
아침을 장터목 산장에서 하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작년에 종주했던(성삼재-유평리) 기억이 가슴에 또다른 새로움으로 와 닿는다. 하늘이 쉽게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을 듯 잔뜩 찌푸리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태세다.
좀 늦은 식사를 벽소령에서 꿀맛같은 라면 한그릇으로 뚝딱 해치웠다.연하천에서 1박 하기로 정하고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는데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이 금새 옷을 적셔버린다. 온통 안개에 휘감은 채로 1시간을 넘게 비를 맞고서야 세석에 도착했다. 이미 발디딜 틈이 없다.
간신히 젓은 옷을 짜고 벽소령을 향한다. 시련 뒤에 환희가 더 짜릿하듯 자연은 또한번 눈부신 아름다움을 세석평전에 펼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 오로지 자연만이 할 수 있는 그 무한한 창조력을 우리 나약한 인간에게 잠시 보여주고 있다.
역시 선녀샘의 물맛은 일품이다. 가슴 속 깊은 삶의 응어리들을 모두 다 씻어 내리는 듯 시원함을 준다.
연하천 1박을 위해 지친 발걸음을 재촉한다. 연하천의 샘물 또한 차갑기로 일품이다. 여유있는 저녁식사를 끝냈다. 밤 하늘의 별들이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손을 벌리면 한웅큼 주을 것 같은 별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이튿날 서둘러 아침을 끝내고 먼동이 뜨기 전 발걸음을 옮긴다. 새벽 이슬에 벌써 양말 속이 흥건 하게 젖어든다. 방울 소리에 놀란 새들이 여기저기 서로를 깨우는 소리에 연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삼도봉 정상, 눈부신 햇살, 멀리 노고단을 보며 이제 출발산행을 같이한 지원팀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이 와 있음에 긴장과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화이팅을 외치는 동료들의 소리가 성삼재를 울리고 내 가슴을 울리면서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린다. 뒤돌아보지 말자! 그래 가자! 지금부터는 혼자다!
신과 자연만이 날 위할 뿐! 이제는 혼자다. 만복대로 향한 첫발! 두려움의 엄습! 잠시 배낭을 풀고 긴 바지로 갈아 입으면서 마음을 평정시켰다.
지금까지 왔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진다. 끝이 없는 억새풀, 잡목, 가시, 하늘은 용서를 하지 않는다. 난데없이 천둥 번개, 소나기가 키 작은 나무 하나 없는 능선에서 나를 초토화시켜 버린다. 앞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침반 하나. 비닐에 말아 쥔 지도. 정령치를 향해 가야만 한다. 백두대간의 길은 그렇게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만복대를 넘어 길을 놓친 것 같다.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다시 나침반을 들고 지도를 펴 본다. 앞은 보이지 않고 30분을 헤맨 것 같다. 지도에 나온 시간과 방향을 가지고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첫 시험구간을 통과한 것 같다.
이미 몸은 지쳐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물은 바닥이 나 버렸다. 멀리 정령치 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첫 시험대를 통과한 나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패잔병 그것이였다.
간신히 식수를 구하고(매점주인, 가뭄으로 식수가 없음) 텐트를 치고 죽 한그릇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풀 죽은 몸을 잠시 의자에 기대어 본다. 멀리 천왕봉에서 반야봉, 지리산의 절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과연 지금부터 해낼 수 있을까? 다시 곰씹으면서 텐트에 꼬꾸라져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접는다.


'우산 쓴 자전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3, 4  (0) 2002.12.19
백두대간) 2. 정령치- 여원재  (0) 2002.12.19
(논평) 누가 보상금 더 달라 하나?  (0) 2002.12.18
시(어느날의 술)  (0) 2002.12.14
(논평)쥐약 놓는 날  (0) 2002.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