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쓴 자전거를

백두대간) 2. 정령치- 여원재

100-b 2002. 12. 19. 17:37
54일간의 백두대간 단독종주기
끈끈이 산악회 박종국


2 정령치-여원재

매점주인에게 어렵게 사정해 물한통을 담았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발생할 지 모르니 물은 항상 남겨라! 첫 시험대를 통과하면서 터득한 철칙이다.
정령치의 눈부신 일출을 뒤로 하고 고리봉을 향한다. 키를 넘는 잡목과 싸리들. 이러한 것이 대간의 길이라 깨우쳐 준 덕분에 두려움은 덜하다.
고리봉 정상. 이미 헤멘 경험으로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니? 대간이 한없이 아래로 간다. 세걸산은 버린 것이 확실한데 끝까지 내려간다. 묘를 찾아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첫번째 묘다. 이제부터 대간 상의 모든 묘에 극락왕생을 빌어드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고촌삼거리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또 하늘은 시련을 주신다. 지겹게도 쏟아지기 시작한다.
대간은 마을 길을 따라 주촌까지 가야한다. 마을은 평화롭다. 아스팔트를 한없이 걷는다. 처음 만나는 마을. 그리고 혼자다. 의지할 곳은 산 밖에 없다.
가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을 풀었다. 너무나도 많은 양의 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정면으로 희미하게 수정봉이 보이는 것 같다.
가재마을 입구에 들어서는데 저 멀리 소나무가 너무나도 멋지게 한 눈에 들어와 버린다. 길은 놓치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쉬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데 넓은 우물이 하나 있다. 또다시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한 바가지를 다 마셨다. 너무나 깨끗하고 차고 맛있는 물이다. 푸릇하다. 이렇게 물이 고마울수 있을까? 언제 우리가 이렇게 물의 고마움을 알수 있을까? 소나무에 이르러 마을에서 세운 비석 앞에 절을 하고 잠시 쉬어 가기로 하는데 두꺼비 한마리가 내 옆을 지난다. 마치 제 집에 불청객이 찾아온양 뚜벅뚜벅 숲을 헤치며 간다.
육포 한조각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수정봉에 오른다. 저멀리 덕산 저수지와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표현할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유로움, 부드러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아늑함 그 자체다.
한줌의 쌀로 점심을 지어 허기를 채우고 여원재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정북쪽을 향해 대간이 첫번째 마을에서 숨을 고른 듯 그렇게 대간의 등은 편안했다. 산불이 난 것 같다.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낭패를 당할 것 같다. 독도에 신경 쓰면서 시그날(표시기리본)을 달고 좁은 소나무 사이를한참 씨름 해가며 지나는데 멀리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 동학란과 임진란의 피맺힌 역사를 간직한 여원재가 눈에 가까이 잡힌다. 산이 동네 뒷산이고, 밭이라 헷갈린다. 비는 또 내리기 시작한다. 손과 발이 물러터지는 것 같다.
봉숭마을 개울가에 몸을 씻고 여장을 풀기로 했다. 가랑이 안쪽에 물집이 잡혀 허물이 벗겨지고 잡목에 긁힌 양쪽 팔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대간이 준 영광을위한 고통의 상처!
밤새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친다. 태풍인 것 같다. 그칠줄 모른다. 미천한 인간들을 비웃듯 엄청나게 쏟아버린다. 텐트를 옮겨야 했다. 봉숭황토마을로 내려왔다. 겨우 비를 피할 수 있게 황토 찍는 공장에서 젖은 여장과 옷을 말릴 수 있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들이다. 비는 꼬박 3일을 그렇게 내렸다.


'우산 쓴 자전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한해가 시작됩니다.  (0) 2002.12.31
백두대간) 3, 4  (0) 2002.12.19
백두대간) 1. 천왕봉--정령치  (0) 2002.12.19
(논평) 누가 보상금 더 달라 하나?  (0) 2002.12.18
시(어느날의 술)  (0) 200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