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빚어낸 아름다운 정원,
'아침고요수목원’의
시간을 거닐다
한상경 아침고요수목원장(원예 70)
색색별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자연의 모습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조용히, 때로는 벅차게 춤사위를 선보이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고요하게 일렁이도록
만든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아침고요수목원’을 찾는 이라면
한번쯤은 느껴봤음직하다. 어쩌면 이 수목원을 이뤄온
한상경 원장(원예 70)의 소망처럼 더 많은 것을 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들의 가슴 속에 심어내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벽 앞에 서다
한상경 원장의 젊은 시절 꿈은 농촌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삼육대학교 김종하 총장이 그를 불러 ‘교육을 위해서 일생을 바칠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었던 때,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니오’라고 대답을 했다.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꿔왔던 그에게는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런 그에게 김 총장은 ‘교육은 자신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실현케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을 움직인 그는 김 총장이 제안한 교수직을 수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나는 내 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실현케 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흙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흙이라는 주제는 노래 혹은 시에서나 아름다운 것이지 정작 본인이 그 길을 택하고 손에 흙을 묻히며 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이죠. 그들을 어렵게 공부시켜온 부모님들은 더 했고요.”
또다른 꿈을 가슴에 품다
이상과 현실의 벽을 느낀 그는 한국에서의 학문 활동에까지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한국을 떠나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교수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학문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원예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죽으니 학문도 같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먹는 원예’가 아닌 ‘즐기는 원예’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전 제 학문의 길을 ‘원예미학’쪽으로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여러 교수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논의도 해봤죠.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 제 자신부터 변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카메라를 가지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꿈에 확신을 지니고 있던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던 중 캐나다의 ‘부차드 가든(Butchart Gardens)’을 방문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상상하던 ‘즐기는 원예’를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가슴이 벅차오른 그는 ‘한국에도 이런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부차드 가든을 보자마자 가슴이 쿵쾅거렸죠. 제가 바라던 원예미학을 그곳에서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내 고향인 한국에도 이런 정원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런 꿈을 제 아내도 응원해줬습니다. 이어 그 정원의 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죠.”
그가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정원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 가장 한국적이어야 세계인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
그것에서 발전된 것이 바로 지금의 ‘아침고요수목원’이 된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 그리고 이상주의자의 목표
결심이 선 뒤 한원장은 한국에 돌아와 마음 속에 그린 아침고요수목원을 현실로 이룰 땅을 찾아다녔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군부대가 없는 곳, 고압철탑 등 시계를 가릴 수 있는 구조물이 없는 곳이어야 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지금 아침고요수목원이 자리한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이 땅은 이미 다른 사람과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목적으로 땅이 활용될 예정이었다.
그는 계약자를 찾아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말로 그 사람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수목원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투자한 돈에 비해 땅은 생각처럼 쉽게 따라주지 않았고, 직원의 수도 늘어 개발에 드는 비용은 점점 많아지기만 했다. 결국 집까지 팔아가면서까지 개발을 하기로 한 그는 일터로 집을 옮기면서까지 수목원 개발에 열을 올렸다.
“수목원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 묘목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었어요. 전국의 거의 모든 나무를 파악하고 균형미와 자연미를 살릴 수 있는 미적인 가치가 큰 나무들만 골라왔거든요.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수목원 건립을 위해 약 3년을 투자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보지 못해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작업하는 인부들의 인건비라도 건질 생각으로 미완의 상태였던 아침고요수목원을 1996
“기사가 실린 그 날 거짓말같이 600여 명의 관람객이 수목원을 찾았고, 그 이후로 꾸준히 언론에 소개가 되면서 오늘날 아침고요수목원의 유명세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꿈은 변화의 시작점
“꿈을 꾸는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상경 원장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꿈을 꾸고, 꿈이 있는 나는 행복하다’고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단다. 잠자리에서도 꿈을 꾸고, 꿈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미의 원형’을 찾아 헤맵니다. 미의 원형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면 정말 헤어 나오기 어렵죠. 전 아침고요수목원이 조금이나마 이러한 미의 원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한 원장은 아침고요수목원이 ‘미의 원형’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전하고 그 감동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의 꿈에서 시작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한국을 대표하는 수목원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되었고 세상을 아름답게 감동시키고 있다.
그처럼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 지금, 세상은 또어떤 변화를 통해 아름다운 감동을 우리들에게 선사하게 될까. 그의 이야기 속에서 피어난 아침고요수목원의 시작과 변화.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누군가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세상의 아름다운 변화가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한상경 동문은 '시대천사' 모금의 취지에 동감하여 모교에 대한 발전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100주년 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2천만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서울시립대는 동문분들의 염원을 담아 더욱 발전된 모교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출처] 한상경 아침고요수목원장 (원예70) 인터뷰 |작성자 서울시립대
'스크랩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가디언, 영국정부 탄압피해 NYT와 `스노든 자료` 공유 (0) | 2013.08.24 |
|---|---|
| [스크랩] 노원구 임대아파트 추진계획 (0) | 2013.08.06 |
| [스크랩] 최장집 "안철수 현상과 진보적 자유주의 맞닿아 있다" (0) | 2013.06.23 |
| [스크랩] 노원구 임대아파트 추진계획 (0) | 2013.06.13 |
| [스크랩] 서화작품에 낙관 찍는 법 (0) | 2013.06.13 |